[성은 스펙트럼이다] 1. 믿음, 흔들리다

구현모 · 88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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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하나.

패션 테러리스트. 그건 내 또 하나의 이름이었다. 친구들은 남과 다른 독특한 패션센스를 자랑하는 나를 측은히 여겼다. 빨간색과 보라색 등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색을 좋아하는 내게 친구는 검은색 파카를 추천했다. 가난 하디 가난한 대학원생의 지갑 때문에 몇 날 며칠 동안 고민해 외투를 샀다. 할인에 할인을 먹여 참 착하게 샀다. 새 신을 신고 뛰어볼 기세로 새 옷을 입고 신나게 학교에 갔다. 친구가 하는 말은 “그 옷, 너무 여자 옷 같지 않아?”

장면 둘

명일역 인근에 산다. 여느 때와 막차를 타고 명일역에 도착했다. 물을 너무 많이 먹었는지 갑자기 신호가 와서 화장실에 들러야 했다. 친구와 전화하면서 들어갔는데, 들어가 보니 소변기가 없었다**. 알고 보니 여자 화장실이었다. 소스라치며 나왔다. 전화 건너편에 있는 친구들에게 들린 내 목소리는 “으아, 시발!”이 전부였다. 맥락 없이 불현듯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난, 왜 남자 화장실에 가야만 하는 걸**까?"

장면 셋.

지오디 시절부터 윤계상의 팬이었다. 윤계상의 목소리가 빠진 지오디의 노래는 무언가 아쉬웠다. 선미 없는 원더걸스와 같았다. 윤계상의 영화도 좋았다. <발레교습소>, <비스티 보이즈>, <소수의견>을 봤다. 내게는 좋았지만 안타깝게도 흥행하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도 드디어 흥행작이 하나 생겼다. 바로, <범죄도시>다. 흥행 성적은 좋았고 그의 대사는 유행어가 됐다. 하지만 조선족에 대한 편견을 만든다는 논란을 낳았다. 이 과정에서 몇몇 기사는 조선족을 동포라 묘사했다. 민족과 동포라는 기사에 염증이 났다**. 그럴 때마다 나는 친구에게 “한국인이면 한국인이고 외국인이면 외국인이지, 무슨 동포냐. 정정당당하게 여권으로 말하자”라고 말했다**.

내가 너를 분류하는 이유

여자 옷과 남자 화장실 그리고 여권까지 모두 두 가지 전제를 가진다. 첫 번째 전제는 대상을 명확히 분류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는 것이다. 기준이 있어야 나눌 수 있다. 둘째는 분류에 따른 분리가 유용하다는 전제다.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을 나누는 이유에는 안전과 운영 효율 증진 등의 유용한 목적이 있다. 여권은 국적민의 관리를 용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차이가 있어야 분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남성과 여성 사이에 명확한 차이가 있어야만 구분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차이'가 모호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팔씨름에서 여성에게 지는 남성, 면도를 하지 않아도 되는 남성은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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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입니다

차이는 이토록 모호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런 차이를 전제한 분류법을 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가 전통적으로 그래 왔기 때문이다. 특히 성별 구분을 가장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인류사회는 끊임없이 세상을 나누는 기준을 만들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정시와 수시 등 수많은 분리가 그러하다. 특히 국적과 성별은 구성원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서 평생을 함께 한다. 우리가 한국인 내지 남성과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데엔 여권과 주민등록증이 큰 역할을 한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왜 본인을 남/여성이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으면 적지 않은 숫자가 주민등록증을 들이밀 것이다. 국적을 물을 때 여권을 언급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주민등록증과 여권은 분류의 결과이지, 근거가 아니다.

또한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았다고 그 기준이 절대 불변의 진리인 것도 아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그 기준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 기준으로 분류된 사람이 더 이상 그 기준이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거나 틀렸다고 증명하면 기준은 의심받는다. 트랜스젠더의 존재와 이에 대한 대한민국 법원의 판결이 그 예다. 법원은 2017년 2월 14일, 여성 성기를 만드는 수술을 받지 않은 MTF (male to female: 남성에서 여성으로)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을 허가하며 “국가는 각 개인이 자신의 기본적인 정체성과 어긋난 형태로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닌 삶을 강요받도록 하면서까지 신분관계 체계를 경직되게 운영해선 안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주 바뀌거나 근거가 미약할 때 기준은 흔들린다. 기준이 흔들릴 때, 분류의 신뢰성은 의심받는다. 우리가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던 성별 기준은 사실 자주 바뀌었고 반박됐다**. 성별에 대한 기준은 완성형이 아니다. 아직까지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