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로섹시즘] 3. 남녀에게 어울리는 색은 없다

나에게 어울리는 색만 있을뿐

구현모 · 737381일전

가장 급진적인 색, 핑크.

딱 10년 전으로 돌아가자. 2007년과 2008년 즈음 핫핑크는 새로운 색깔로 대두됐다. 인터넷 유저들은 ‘사나이는 핫핑크’라며 핫핑크가 남자의 색이라고 불렀다. 물론, 핑크와 남자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상을 비튼 유머다. 하지만, **사실 핑크는 정말 남자의 색이었다. **

미국 의류를 전공한 파올레티에 따르면, 1910년대만 해도 분홍은 정말 남자의 색이었다. 1918년도 미국 유아 패션 잡지 Earnshaw’s Infants’ Department에는 강하고 급진적인 분홍색은 남자아이에게 어울리고, 얌전한 파란색은 여자 아이에게 어울린다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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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급진적이다
출처 : CC BY Clker-Free-Vector-Images

“여자인데도 잘하네”라는 스노우볼

성별 차이 때문에 수학과 과학 분야에 진출하는 여성이 적다는 주장은 비판받아 왔다. 앞서 래리 서머스는 여성이 선천적으로 수학과 과학에 취약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18세 이하 미국 학생 2만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성별에 따른 수학 점수 차이는 유의미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해당 분야에 여성이 적을까.

시작은 작았다. 남자와 여자의 뇌는 다르다는 이 한 문장이 우위를 만든다. 그 우위가 낙인이라는 도장을 만들고 수많은 사람을 찍는다. 낙인찍힌 이들은 스스로를 위축시킨 상태에서 사회화된다. 이 상태에서 뇌를 비교하는 일은 의미 없다. 선천적 차이를 발견하고자 진행하는 연구지만, 후천적 차이밖에 발견하지 못한다.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나 어디에 있는지는 안다. 여러 연구는 범인이 사회적 편견과 레이블링이라고 지적한다. 레이블링에 따른 편견이 사람의 자존감을 압박해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개인의 실력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다. 바로 자존심과 자존감이다. 경쟁적 상황에서 자신감과 자존감이 능력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연구도 있다.

정신과 전문의 안나 펠스 역시 자존감이 위축될수록 개인의 꿈과 열망이 흐릿해져 자기 계발에 소홀해진다지적했다. 생물학, 경제학, 심리학 그리고 사회학을 통해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느린 이유에 대해 연구한 뉴욕시립대학교의 버지니아 발리안 교수 역시 여성에 대한 편견이 사회 진출을 막는다비판했다. 전 미국 심리학 회장 다이앤 할펀 교수의 연구와 뇌과학자 리즈 엘리엇의 저서 모두 성별에 따른 유년기 뇌 구조의 차이는 거의 전무하기에 사회적 요소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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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한 방에 너도 팍 나도 팍
출처 : CC BY North Carolina Digital Heritage Center

차별은 거악이 아니라 소시민이 저지른다. 공영방송과 종합편성 채널 혹은 북한의 선전용 콘텐츠가 편견과 레이블링을 자행하지 않는다**. 우리가 쉽사리 던지는 한 마디가 레이블링을 저지르고 편견을 만든다. “여자 치고 잘하네”, “여자는 원래 잘 못해” 등 쉽게 던지는 말 한두 마디가 작은 씨앗이다. 2017년 사망한 하버드 대학교의 벤 바레스 교수 역시 MIT 학부 시절 다른 남학생이 고전하던 문제를 풀었을 때 교수에게 남자 친구가 풀어주었다는 반응을 들었다고 한다. 한 마디가 한 문장이 된다.** 한 문장이 모여 편견을 만들고 편견이 그들을 위축시킨다**. **

결국은 방향이다. 수학을 못한다고 하면 못하고, 잘한다고 하면 잘하게끔 성장한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편견은 고개를 숙이게 한다. 미국의 제인 엘리엇이란 교사가 학생을 대상으로 한 가지 실험을 했다. 갈색 눈을 가진 사람이 우월하기에 더 똑똑하다고 거짓말을 했고 갈색 눈을 가진 학생에게 쉬는 시간을 더 주는 등 특권을 줬다. 그러자 파란 눈을 가진 아이들의 성적이 떨어지고 수업 참여도가 떨어졌다. 간단한 편견과 차별이 사람을 위축시켰다.

뇌과학으로도 증명됐다. 제시 아이젠버그가 가상공간에서의 경험이 실제 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실험했다. 컴퓨터상에서 함께 게임하던 두 사람이 한 사람을 따돌렸을 때, 그 사람의 뇌는 물리적 고통을 느낀 것과 같이 반응한다. 컴퓨터 상에서 따돌림이 실제 폭력처럼 느껴진다는 이 연구는 차별적 언행과 레이블링 그리고 편견이 뇌와 몸에 실제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차별의 함수 = 차이*편견

성차별과 인종차별은 닮았다. 우생학은 흑인이 열등하고 백인이 우등하다고 주장했다. 정치인은 우생학의 연구를 통해 소위 유색인종이라 불리는 황인과 흑인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했다. 당시 우생학은 유사과학스러운 요소가 많았지만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장애인과 유대인을 학살하고 장애인을 강제로 거세했다. 심지어 미국의 인디애나 주는 1907년에 범죄자와 정신질환자가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강제적으로 불임 시술을 내리는 법을 제정했다. 인디애나 주를 시발점으로 총 30개의 주가 관련 법안을 제정했고 이로 인해 약 6만 4천여 명이 강제 불임 시술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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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애나 주정부는 이를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해놓았다
출처 : 인디애나 주정부 홈페이지 캡쳐

우생학과 뉴로섹시즘 모두 생물학적 차이를 근거로 사회적 차별을 옹호한다. 문제는 생물학적 차이마저 제대로 증명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과학이라는 얼굴로 가장 비과학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설을 설정하고 적합한 연구방법을 통해 증명하고 다시 논박해도 모자랄 판에 너무나 성급하게 결론을 내렸다**. 모든 연구가 물음표를 가리키는데 너무나 이르게 마침표를 찍었다. 10분 간의 대화가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를 낮추고, 유전학에 대한 이해가 동성애에 대한 혐오적 행동을 바꾼다. 대화와 이해가 인지와 행동을 바꿨다. 편견과 몰이해 그리고 차별이 뇌를 위축시키고 사람을 아프게 한다. 그렇기에 마침표 대신 쉼표와 물음표를 찍으며 대화하고 이해해야 한다. **나은 이해가 나은 세상을 만들고 서로의 우산을 만든다.

화성과 금성을 건너 지구로

2가지로 보이는 성별은 사실 40가지가 넘는다. 40가지의 성별을 무시하고 남성과 여성만으로 나누어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후천적으로 사회화된 뇌를 비교하는 것이 선천적인 차이를 설명하는 데에 한계가 있고 남성과 여성을 나누는 기준 역시 논박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을 넘어야 한다.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것을 보아야만 한다. 피부색만으로 사람을 알 수 없고, 성별만으로도 알 수 없다.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선 피부와 성별을 넘어야만 한다. 이 점에서 남자와 여자의 뇌가 다르다는 전제를 다시금 생각해봐야 한다. 한 명의 사람이 성장하는 데에는 마을이 필요하고, 그 사람은 곧이어 하나의 세계로 자라난다. 이렇게 거대한 세계를 단순히 성별만으로 판단하는 일은 불가하다. 이해는커녕 몰이해다.

생물학적 차이가 사회적 차별을 옹호해선 안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성별만으로 사람을 제단하고 판단해서도 안된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하지만 성별 때문만은 아니다. 삶의 과정이 다르고 그 와중에 쌓아온 나이테가 다르다. 우리라는 세계에 성별만으로 레이블링하지 말자. 그 사람을 온전히 그 사람으로 이해해야 한다. 화성에서 온 남자도, 금성에서 온 여자도 없다. 그저, 지구에서 온 '나'일 뿐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